비비안 리


비비안 리: How I Became a Psychologist

이것은 내가 어떻게 심리학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고: 좀 길어요)

 
Monument to fallen Canadian soldiers at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Monument to fallen Canadian soldiers at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이 이야기는 용기와 협력, 인류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1950년 한국은 북한에 의해 점령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만약에 여러 나라들이 유엔과 함께 한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북한이 한국 전체가 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나는 결국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의 정권 아래에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캐나다인을 포함하는 전세계에서 온 용감한 사람들이한번도 와 본적 없는 한 나라를 위해 그들의 삶을 희생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한국은 아마도 오늘과는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 내가 캐나다에서 이러한 글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며 자유와 자유 세계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10살 이전에 한국전쟁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2007년 부산에 있는 유엔전쟁기념묘지 앞에 서서 한국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었는지 배웠던 그날 나는 한국인들을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 살게 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내어준 캐나다 군인들을 포함하는 전 세계에서 온 모든 군인들의 무덤을 둘러보았다.  전쟁과 군인에 대한 나의 시각도 그 순간 부터 변화되었다.

이번 이야기는 연민과 이타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부모님들은 두 분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쪽은 특히 더 가난했다. 집에는 아버지를  중등학교에 보낼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대학을 운영하던 한 남자가 아버지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당시에 축산학은 그가 공부하고 싶었던 전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더나은 교육에 만족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학문을 공부한 것이 양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허락하면서 아버지를 캐나다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Author’s parents – Dr Hoyun and Young Lee

Author’s parents – Dr Hoyun and Young Lee

Author with parents and extended family

Author with parents and extended family

Author (near Pusan)

Author (near Pusan)

이것은 인내와 성공을 향한 갈망에 대한 이야기 이다. 나의 부모님들은 결혼 후 오직 100$의 자산을 가지고 캐나다로 건너오셨다. 그 돈은 세계를 가로질러 날아오고  아는 이도 없는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100달러 였다. 나는 주말 조차도 완전하게 나 스스로100달러만 가지고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 후 부모님들은 농장에서 일하다 편의점을 운영하시고 이내 몇개의 사업을 하시면서 두명의 자녀를 키웠다. 심지어 그들은 살기 어려웠던 시간에조차, 조금의 돈을 집에 보내고 식구들이 캐나다로 이민 오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 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아버지는  학사과정을 마치고 석사와 박사도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공부를 그는 제2 의 언어로 해냈다. 내가 14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의 박사 과정 이후의 일을 위해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가시는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 박사 이호윤은 지금 도지사로 부터 받은 우수한 과학연구상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연구상을 수상한 성공한 과학자이자 교수이다.

이번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은 영웅인 나의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그녀의 삶 전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본인의 희망이나 꿈은 한 옆으로 밀어두셨던 여자였다. 한 소녀는 어머니가 가정폭력으로 힘들어 하는 동안 그녀의 어린동생을 키우느라 본인의 어린 시절을 잃었다. 이 어린 소녀는 그녀의 여동생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그녀가 가졌던 고등교육에 대한 꿈을 옆으로 밀어두었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조용히 아픈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녀의 목표와 야망을 가족의 삶을 위해 영원히 옆으로 밀어두었다.  아직까지 그녀는 누구에게도 희생에 대한 대가을 바라지 않으며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이며 그녀의 힘으로 가족의 번영을 위해 모든 것을 해 왔고 사랑 외의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신 분이다.

우리 집안과 주변 세계 사람들의 이러한 모든 결정들이 나를 임상심리학자라는 오늘의 삶으로 이끌었다. 나는 정말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유로운 사회 캐나다에서 성장 할 수 있었다. 나 이전에 스스로를 희생했던 모든 사람들로 인해 나에게 허락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안전하고  실수 해도 괜찮으며 부모님들은 여전히 나를 믿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는 집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심리학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좀 더 유리한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나도 성장하면서 여러번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랑과 안전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야망적인 롤모델이 주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비전 속에 살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을 때 한 걸음 뒤에 있는 다른 젊은 사람들의 삶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내게 다른 부모님이 계셨다면, 나는 분명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며 분명 그것은 아주 어두운 길이었을 것이다. 만약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안전과 삶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나는 캐나다에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유리한 시작 점을 가지고 더 나은 삶을 향해서 나아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온전히 살면서 특별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아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Numbers of fallen soldiers from each UN country at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Pusan)

Numbers of fallen soldiers from each UN country at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Pusan)

세상에 대한 나의 시각은 내가 유엔전쟁기념묘지 앞에 섰을 때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스스로의 건강과 안전을 희생한 모든 사람들을 경외했으며 가끔은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산다. 그리고 군인들의 정신적 외상에 대한 충격에 관심을 가지고 긴급구조원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어떻게 심리학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캐나다와 한국에 있는 많은 가족들과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오늘 가진 자유를 나에게 주기 위해 희생해 왔다. 나는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난 운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으로 부터 거대한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일에 대한 바람은 이러한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다른 이들을 돕는 과정에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돕는 것이다. 사람들이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Vivien Lee
Toront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