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몬티
앤드류 몬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나의 이야기는 내가 캐나다에서 한국에 온 이야기다. 이곳에 사는 모든 캐나다인들과 캐나다를 집이라고 부르는 많은 한국인들 처럼 나에게도 한국은 특별하고 도전적이며 아름다운 풍미로 가득한 곳이다. 나에게는 이 경험이 보람있고 잊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는 21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한국 계 캐네디언들이 그러는 것처럼 내가 처음 한국에 가게 된 것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나의 오래된 고등학교 친구의 초청에 의해서 였다. 처음에는 그곳에 1-2년 정도 머물 계획이었다. 당시의 나는 한국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 지금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한국 요리를 알아가고 있어 보이지만 그 때의 나에게는 가장 흔한 김치나 소주도 이국적인 것이었다. 한국 음식이 좋아지는데에는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소주가 좋아지는데에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온타리오 미시사가를 떠난다는 것은 어려웠지만 한국에 일하러 와 있는 캐나다 출신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한국 적응은 쉬웠다. 나는 나처럼 새로운 나라와 삶을 경험해 가고 있는 캐나다 출신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스로 그 곳에서의 삶을 익혀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돌보고 보살펴 주었다는 말은 충분하지 않을 만큼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다. 마치 우리가 집에 돌아온 것처럼 이른 아침마다 스탠리 컵 결승전이나 올림픽 금메달 게임들을 보던 시간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우리는 캐나다로 돌아간 것처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캐나다에 있는 것 같은 생활을 했다. 그 시절 우리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키워가고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서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하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소비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부분은 나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면 그것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만든 초석이 되어주었으며, 훗날 연아마틴 상원의원님에게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국의 바쁜 삶에 적응하는게 신났지만 엄청난 수의 사람과 야외 공간의 부족은 나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취미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몇명의 캐나다인 친구들과 Gecko’s 라고 불리는 지역바의 도움으로 하키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놀라워만 하던 한국인들도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었으며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러 왔다. 몇 달 안에 우리는 고려대학교 팀과 경기를 치렀으며 재능있는 한국 하키선수들이 우리팀에 합류했다. 이 시기부터 한국에 머무는 것이 단순히 짧은 기간의 체류 그 이상의 것임을 느꼈다. 18년 전의 나는 많은 캐나다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충분히 운이 좋았으며 또 많은 한국인들과 함께 하키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키게임은 한국인과 캐나다인들이 그들의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였다.
하키이야기를 좀 더 한다면, 나는 우연히 캐나다 군인들이 1952년의 얼어붙은 임진강 위에서 했던 하키 게임 “우리의 경기” 흑백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때 부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싸우려고 자신들의 삶을 희생한 이 엄청난 신사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 전 참전 군인들에 기억하기 위해 하키 시합을 조직하면서 부터 나의 삶은 아주 많이 바뀌었다. “임진강 컵”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도 없는 가장 잔인한 전쟁의 하나에 참전함으로 우리를 위해 봉사한 참전용사들에게 바치는 하나의 헌사였다. 이때 연아마틴 상원의원을 만나고 참전용사분들을 소개받았다. 전쟁에 참여했던 그들의 용기와 매너는 내게 항상 기억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나의 감사함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나는 품앗이라고 불리는 연아마틴 상원 의원님이 중요한 역활을 하시는 한국인 자선단체에 가입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한국인 학생들을 한국 전쟁에 참전해 우리 나라를 도와주었던 여러 국가들에 데리고 갔다. 우리는 또 학생들이 직접 참전용사들을 만나고 감사편지를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사랑은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었다. 한국 전쟁에 참여했던 영웅들이 그 공로를 인정 받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데 특히 그들이 지켜주었던 나라의 다음 세대를 통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달 받는 것은 더욱더 의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들 중에 누가 가장 크게 감동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이 아이들이 그들의 영웅들에게 흠뻑 빠져 있었음을 안다. 알다시피 한국 전쟁은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한국전쟁 참전 용사분들을 만난다면 그분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그들은 정말로 놀랍고 훌륭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한국 이야기는 꽤 괜찮은 이야기이다. 그곳에서 나는 좋고 나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이 2002년 월드컵에 열광하던 시기에 나는 그곳에 있었다. 나는 또 수천 만명의 사람들이 IMF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손에 금과 은을 들고 줄 서있는 모습도 보았다. 한국이 세계에서11 번째로 큰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경제위기의 잔해와 절박감이 사람들의 투지를 불러일키고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국 생활 중에서 제일 좋았던 기억은 경은이라는 훌륭한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우리의 레스토랑을 차려 행복한 생활에 접어 들었던 시기였다.
한국은 아주 특별하고 매우 잘 짜여진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캐나다와는 아주 다른 곳이어서 흥미롭다. 나는 내가 캐나다에서 태어난 것이 축복임을 느끼며 또 한국 사람들에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한국과 캐나다가 함께 하는 순간이다.
두 나라 모두를 마음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과 캐나다 모두를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나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여러분의 이야기도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ndrew John Monteith aka “Monty”
Related links:
Video: Imjiin Classic Hockey Game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