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숙
박명숙 : 캐나다에서의 나의 생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캐나다로 보내셨다. 오로지 공부 하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무작정 가방 6개와 8살인 딸과 1살인 아들을 데리고 밴쿠버에 1995년 1월 17일에 도착 했다.
남편(목사님)은 공부 하고 나는 생활을 책임져야 하기에 한국에서 두 달 미용 기술을 배워 왔다. 그 기술로 미용실에 취직이 되어 미용사를 돕는 일을 하다 두 달 만에 하나님께서 준비 하신 장소에 이라크 사람과 함께 미용실을 열게 되었다. 기술도 없이 어떻게 미용실을 열었는지 지금 생각 하면 그 용기가 대단하다.
처음 미장원에 온 파마 손님의 머리를 3시간이나 말았는데 미용사 꼼꼼 하게 머리를 잘 만진다는 소문으로 그 다음에는 자기 딸을 데리고 와서 머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하나님은 눈과 생각을 바꾸시는 분임을 경험 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미장원을 운영한지 6개월 만에 많은 손님들을 보내 주셔서 예약 하지 않고는 미장원에 올 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다. 나는 프로 미용사가 되어 가고 단골 손님도 많아졌다. 바쁘다 보니 내 육신이 피곤 하여 기도 할 시간도 말씀 묵상 할 시간도 없이 내 영성은 바닥으로 내려 가고 있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롬8:6)” 영의 생각 보다는 육신의 생각을 먼저 쫓아 가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불안 해 하기 시작 했다. “여보! 미장원 그만 두고 기도 하는 당신의 모습으로 돌아 오면 좋겠어요” 라고 권면 하지만 그 말이 내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내가 미용실을 그만 두면 목사님 학비와 우리 생활은 어떻게 책임 져야 하는지, 자꾸 인본주의 생각이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몇 번씩 권면 하였지만 무시 하고 내 생각대로 일을 하며 계속 밀고 나갔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나 선명한 꿈을 주셨다. 오른쪽으로 가면 10시에 추도 예배가 약속 되어 있고 왼쪽으로 가면 10시에 미장원 커트 손님이 약속 되어 있었다. 그 삼거리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한 것이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예배 장소로 가면 예배가 끝나지 않겠구나’ 생각 되어 미장원이 있는 왼쪽으로 돌아 길을 가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큰 구렁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나를 삼키려는 듯이 달려 드는 것이었다.
“하나님! 잘못 했어요 예배 드리러 갈게요 하나님! 용서 해 주세요” 내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났다.
남편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당신 미장원 그만 두고 당신의 모습으로 돌아 오지 않으면 정말 구렁이 한 테 무릴 거예요” 라고 말 한다. 그러나 난 그 꿈을 영적으로 민감 하게 깨닫지 못했다. 미장원이 잘 되니까 사탄이 못 하게 하려고 방해 하는 것이라고 나의 어리석음과 고집으로 계속 일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주신 후 일년이라는 기간을 기다려 주셨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고 내 방법대로 살아 오는 나에게 깨닫게 하기 위하여 나의 환도 뼈를 치신 것이다. 왼쪽 환도가 아파 오면서 도무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만드셨다. 병원에 가보니 연골이 다 없어져서 뼈의 신경이 건드리므로 더 이상 일을 하면 다리를 잘 라야 된다는 천 천 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다. 몸이 아프니 그때야 남편의 말이 마음에 새겨졌다.
기도 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 보려고 발버둥쳤던 것을 내려 놓기 시작 했다. 미장원 문을 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 시작 했다. “하나님 도와 주세요 저에게 건강 주시면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 할게요”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50%밖에 형성 되지 않는 다는 연골이 형성되어 두 달 만에 깨끗이 치료 해 주셨다.
건강해지니 다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에서 고기가 생각나 애굽을 그리워 했던 것처럼 경제적으로 힘들어 지니까 다시 미장원에서 일을 하면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를 과거로 돌아 가게 하였다.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 하고 다시 미용을 하게 되었다. 집 베란다에 미용실을 꾸미고 단골 손님들이 찾아 오면 일을 하기 시작 했다. 하나님께서는 8개월 동안 참아 주시다가 다시 꿈으로 말씀해 주셨다.
내가 어린 시절에 자란 마을 뒷산에 기도원이 있었다. 정상적인 길로 가려면 한참을 걸어 먼 길로 돌아 가야만 했다. 그러나 빠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동네 앞 논두렁을 지나 야산을 넘으면 조금 빨리 갈 수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또 고민 하기 시작 했다. 정상적인 길은 너무 멀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빠른 길로 가야겠다고 결정 하고 동네 앞 논두렁을 지나 가는데 어딘선가 회오리 바람 소리가 들려 왔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파랗게 자란 보리 밭 위로 구렁이 두 마리가 내 앞질러 가고 있었다. 보리 밭을 지나 가는 소리가 내 귀에는 회오리 바람 소리로 들린 것이다.
“하나님! 잘못 했어요 정상적인 길로 갈게요 도와 주세요” 소리치며 큰 신작로 길로 되돌아 나오는데 그 논두렁 길에 조그마한 실 뱀들이 늘어져 있었다. 밟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큰길로 나온 후 꿈에서 깨어 났다. 온 몸에 식은 땀을 흘리며 기분이 좋지 않는 꿈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당신 정말 기도 생활 하지 않고 미장원을 계속 하면 이제는 구렁이 두 마리한테 물린다” 라고 얘기 한다.
그러나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새겨지지 않고 또 인본주의 생각으로 자꾸 물질에 계산이 되며 내가 미장원을 하지 않으면 생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 속에서 그 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고 그냥 넘겼다. 그 꿈을 꾸고 5일 만에 난 사고를 당했다.
그때 남편은 공부를 마치고 개척교회를 시작 할 때였다. 얼마 되지 않는 교인들을 위하여 매 주일 이면 나는 밥을 해 주었다. 캐나다에는 고사리가 참 많다. 고사리를 꺾어 말려 두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밥 하기도 쉬우니 꺾으러 가자는 제의를 해 왔다. 남편에게 허락을 구했더니 불법으로 고사리를 꺾는 것은 덕이 되지 않으므로 가는 것을 제지 시켰다. 그러나 남편의 말에 순종 하지 못하고 고사리를 꺾으러 간 것이다.
처음으로 갔지만 산에 널려 있는 고사리를 보니 신이 났다. 쓰러져 있는 통나무를 딛고 넘어 가면 많은 고사리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발이 통나무를 딛는 순간 이끼에 미끄러져 통나무를 안고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외상은 아무 것도 없는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속에서 뭔가 쏟아 지는 느낌이 오면서 고통 때문에 감당 할 수가 없었다. 고사리를 꺾을 수 없어 집으로 오려는데 운전을 할 수가 없이 아파 온다. 구급 차를 불러 Surrey Memorial Hospital 응급실로 옮겨졌다. 엑스레이를 찍으니 갈비뼈가 부러졌단다. 갈비뼈만 부러진 줄 알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숨 못 쉬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경험 하게 하셨다.
그 고통 속에서 삼 일을 지낸 후 family doctor 를 찾아 갔더니 깜짝 놀랜다. 빨리 medical specialist 를 찾아 가라고 소개를 해 준다. Specialist 는 나를 바로 응급실에 입원을 시켰다.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찔려 폐의 공기가 다 빠지고 피 고름들이 내 기도를 막히고 있어 살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 이라며 오히려 의사들이 놀랜다.
호수를 끼어 6800cc 의 피 고름을 빼내며 기적적으로 살아 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고통을 주시려고 작정을 하셨는지 호수가 굽어져 숨쉴 때 마다 폐의 신경을 건드리며 쉬지 않는 고통 속에서 견딜 수 없게 하셨다. 견디기 힘든 고통 때문에 의사는 나에게 천 명에 한 사람 정도는 전신 불구자가 될 수 있는 위험한 morphine 주사를 놓게 되었다. Morphine 주사를 놓는 순간 육신의 고통에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 지는 것 같았다. Morphine 주사로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이 되니 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때부터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원망은 겉 잡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내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나님! 내가 뭘 잘못 했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당신만을 위하여 살아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일을 한번도 범 한적이 없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간 적도 없고 오직 주의 일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내 의를 내세우며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대항 하기 시작 했다.
하나님은 깨닫지 못하는 나를 향하여 이제는 눈만 감으면 가위에 눌리게 하셨다. 새까만 꼬마 병정들 수 백 명이 아픈 곳에서 그네를 타며 나를 괴롭게 했다. 신음 하며 눈을 떠 보니 꿈 이었다. 또 내가 생선을 먹었는데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커지면서 숨도 쉴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이 나를 힘들게 했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꿈이었다. 그 후부터는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설교 테이프 찬송가 테이프를 갖다 주며 들으라고 하였지만 하나님께 화가 나서 듣기도 싫고 성경책 보기도 싫었는데 그때야 옆에 있는 성경책을 들고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 하기 시작 했다.
“하나님! 잘못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당신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잠 한숨도 잘 수가 없어요. 도와 주세요” 라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머리 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데 입술로는 용서를 빌며 눈에서는 눈물만 흘렸다.
3시간쯤 울고 났을까?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있던 내 마음은 사라지고 평안한 마음이 찾아 왔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물음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고통을 주실 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이유에 대하여 알고 싶었다.
“하나님 가르쳐 주세요. 나에게 이 고통을 주신 분명한 이유에 대하여 말씀으로 보내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 하며 그때부터 병상에서 말씀을 읽기 시작 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말씀을 보내주셨다.
“우리가 온갖 환난을 당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 하십니다. 우리를 위로 하셔서 온갖 환난 당 한자들을 위로 하게 하십니다(고후1:4)” 새 번역 성경
이 말씀이 내 마음 속에 불덩이처럼 새겨지며 다 깨달아 졌다. 하나님께서는 내 고통을 위로 하신 후에 또 고통 당한 자들을 위로 하게 하시려고 나에게 이 고통을 주신 다는 것이 깨달아 졌다. 사람의 천 마디 만 마디가 나를 위로 해 줄 수 없지만 하나님 말씀이 레마로 내 마음에 새겨지면 나를 살려 내는 역사가 이루어짐을 경험 하게 하셨다.
이 말씀은 곤란 중에 나의 위로라 이 말씀이 나를 살리 셨도다(시119:50)
고통까지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 하신 최상의 것임을 고백 하며 그 은혜가 너무 감사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세가지 환상을 주시며 깨닫게 하셨다. 16년간의 목회 여정 속에서 병든 자들을 돌아 보는 내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렇게 가증 할 수가 없다. 마음으로 위로 하기 보다는 입술로 위로 하는 내 모습을 바라 보며 통회 하게 하셨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보게 하셨다. 그 고통을 바라 보며 우리 모두의 위로 자가 주님이심을 머리로만 알았는데 가슴으로 느끼게 하셨다. 위로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당한 만큼 위로자가 될 수 있다. 내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우리 주님의 고통과 비교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보여 주셨다. 이 부활이 있었기에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깨닫게 하셨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난 내가 체험한 예수님을 전하기 보다는 성경에 기록 된 예수님을 전했다. 비로서 병상에서 만나 주신 주님을 통하여 내가 만난 예수님을 고백 하게 되었다. 그런 은혜 속에서 육신적으로는 말 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내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21일간의 병원 생활을 하다 퇴원 하게 되었다. 그러나 폐가 아무는 고통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또한 큰 바위를 등에 지고 있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반드시 누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은혜가 있었기에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있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회복 기간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은혜 속에서 힘은 들었지만 잘 감당 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남편에게 문제가 일어 났다. 6개월 동안 나를 간호 하며 아이들을 돌보느라 힘들었지만 그보다는 교회를 개척 하고 성장 하지 않는 교회를 섬기는 고통이 남편의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육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부흥 하지 않는 교회를 바라 보며 자신의 한계점을 느끼고 영적 침체로 빠져 든 것이다. 자신의 무능함을 탓 하며 열등의식 속에서 사람 만나기도 꺼려 하며 골방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날로 많아졌다. 한국으로 돌아 가 목회 하기를 소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국의 목회 길도 막아 놓으시고 부르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 한국에 가서 개척이라도 하면 이곳 보다는 더 나을 수 있으니 가자고 권면 하지만 난 이곳에서 성공 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니 갈 수 없다고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남편의 생각에 동의 하지 않았다. 함께 생활 하는 가족까지도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주니 혼자인 것 같은 고독함이 그를 너무 힘들게 했다. White Rock 바닷가에서 비를 맞으며 죽기를 수없이 원했지만 죽을 수 도 없었다. 하루는 정말 죽음을 각오 하고 바닷가 나무 다리 옆에 서서 “하나님 죽기를 원합니다. 이대로 데려가 주세요” 라고 외치는데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종아! 이왕 죽으려면 기도 하다 죽어라!”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 하기 시작 했다. “하나님 기도 하다 죽겠습니다. 기도 하다 먹을 것이 없으면 순교 하는 것이요. 기도 하다 죽으면 순종의 면류관은 받을 수 있겠지요” 그때부터 남편은 부르짖어 기도 하기 시작 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 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아침, 저녁으로 성전에 나가 울면서 부르짖기 시작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빌려쓰고 있는 교회에서는 울면서 부르짖는 기도를 이해 하지 못했다. 밤, 낮으로 교회에 들어와 울면서 부르짖는 기도 소리를 듣고 우리가 빌린 시간만 들어와서 기도 하도록 경고를 한 것이다. 그때 우리는 캐네디언 교회를 빌려서 주일날만 예배 드리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
마음껏 기도 하고 싶어도 기도 할 수 없는 서러움이 얼마나 큰가를 경험 하게 하셨다. 또한 한국에서 내 교회 건물을 가지고 언제나 기도 할 수 있는 장소를 주셨는데도 기도 하지 않았던 죄를 통회 하게 하셨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때를 쓰는 기도를 시작 했다.
“하나님! 골방 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부르짖어 기도 할 수 있는 처소를 주세요” 라고 기도 하기 시작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만나 주시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택에서부터 기도원을 시작 하라고 말씀 하셨다. “갈멜산에 임 하였던 성령의 불이 그곳에 임재 할 것이다. 밴쿠버, 북미주, 세계를 향하여 기도의 도성이 되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어느 날 나에게 성령께서 주신 감동들을 얘기 하며 집에서부터 밴쿠버 갈멜산 기도원을 시작 할 것을 제의 해 왔다. 그러나 나는 준비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 하는 기도원 목사님은 우리와 조금은 다른 분들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기도원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기도 하기 시작 했다.
“하나님! 전 기도원 사모를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의 훈련도 되지 않았고 기도원 사역은 안 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나님의 계획을 묻기 보다는 나의 일방적인 기도를 드리기 시작 했다. 이 주일이 지난 후 꿈으로 저에게 보여 주셨다. “큰 체육관 같은 곳에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았고 강단에서는 남편이 설교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꿈은 깨어났다.
직감적으로 기도원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또 기도 하기 시작 했다. “하나님 보여 주셔도 난 못 합니다 기도원 목사님은 성격도 과격 하고 남 다른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보시다시피 내 남편은 성격도 온순 하고 차분 한데 어떻게 기도원 원장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 만은 피해 가게 해 주세요” 라고 남편의 성품까지 고하며 할 수 없다고 때를 썼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꿈을 주셨다. 첫 번째 꿈과 똑 같은 장소에 더 많은 사람이 앉아 있고 삼면 벽에는 두 줄로 사람이 서있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때 한 청년이 봉투를 가지고 강대상으로 올라와 남편 목사님에게 기도해 주시라고 부탁 하는 것이다. 남편은 담임 목사님한테 부탁 하지 나한테 왔냐고 하면서 기도 해 주는 모습을 보고 꿈에서 깨어 났다. 초교 파 적으로 모여 있는 교인들을 보게 하면서 기도원 사역임을 확실하게 알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기도원 사역만큼은 할 수 없다고 때를 쓰자 성령님께서 물으신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느냐?” 생각 해 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못 한다고 그러느냐? 너는 순종 하고 따라만 와 내가 모든 일은 시행 하겠다” 강하게 내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셨다. “하나님 잘 못 했습니다 주께서 하라는 대로 순종 하며 따르겠습니다” 라고 고백 하고 사택 거실에서부터 밴쿠버 갈멜산 기도원이 탄생 되었다.
뒤돌아 보면 강권 하여 역사 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누구를 위로 하고 살려 내고 무엇을 하라고 이 사역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은혜 주시려고 이 사역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기도원 사역을 하다 보면 고통의 벼랑 끝에 서서 내 힘으로는 감당 할 수 없어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기도원으로 올라 온다.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요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알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 하다 보면 그들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며 그들의 기도 응답이 나의 기도 응답임을 경험 하게 하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며 은혜 속에서 간증 하게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은혜 속에서 기도원 사역을 감당 한지도 15년의 세월이 흘렸다. 7000평의 땅을 허락 하시고 많은 영혼들을 주님 품으로 돌아 오게 하시는 기도의 도피성이 되게 하시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밴쿠버 갈멜산 기도원을 끝까지 이끌어 가시리라 나는 믿는다.
현재 밴쿠버 갈멜산 기도원은 Langley 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언제든지 힘들고 지친 영혼들이 찾아와 쉼을 얻고 밴쿠버 교회 소 그룹들이 수련회 장소로도 사용하고 있다.
[Edited from: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책 글중]
박명숙 목사
부원장, 밴쿠버 갈멜산 기도원 (Galmelsan Prayer Centre www.galmelsan.ca)
수필가, 밴쿠버 문인협회 회원
저서: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영문판: God Hears All of His Children’s Pray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