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남


조 덕남: 이민 초의 이야기

우리 가족은 1973년 토론토 첫 이민 이후 해마다 이사를 다니다 76년 미시사우가로 오게 된다. 아내 혜일은 곧 ESL 야간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거기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던 Miss Heard를 만나게 되었다.  혜일이 성악가임을 알게 된 미스 허드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여선교회 모임에 와서 노래를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어서 아내는 그 교회의 주일 예배에서도 솔로로 노래하게 되었다. 며칠 후에 목사님의 가정 신방을 계기로 혜일은 그 교회에서 솔리스트로 활동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도 성가대 멤버가 되었다. 어린 두 아들과 우리는 주일마다 오전 에는 Applewood United Church에 출석하고 오후에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 차로45분을 달려 스카보로에 있는 한인 교회에 가기를 몇 년 동안 계속 했다.

78년 가을 Etobicoke로 이사했지만 우리는 그 현지 교회가 좋아서 여전히 주일 오전이면 그곳으로 가곤 했다.  일생을 독신으로 산 미스 허드를 비롯해 많은 교인들이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었고 특히 혜일이 솔로로 노래 할 때마다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어느 추운 겨울 눈 오는 아침, 혜일은 난데 없이 꽃집으로부터 ‘오늘 집에 있냐?’ 라는 전화를 받았다. 두 세 시간 후에 긴 가지 장미꽃 열두 송이가 들어 있는 박스를 받고 그 안에 있는 카드를 읽고 나서야 우리는 그 꽃을 교회의 신도 한 분이 보낸 꽃임을 알 수 있었다. 카드에는 “어제 예배 중에 불러주신 ‘내주를 가까이’가 바로 일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곡이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꽃 선물을 보낸 Mrs. Bienhaus가 누군지는 알수 없었다. 사실 그날 아내의 찬송 시간에 여기저기서 흐느껴 우는 소리와 눈시울을 닦는 사람들을 성가대 석에서 여럿 봤었다.        

그 다음 일요일 Milly Bienhau는 친구를 만나고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는 나와 아내를 집과 카테지에도 초대하고 토론토 심포니, 오페라와 발레 공연도 보여주고 좋은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에도 초대하였다. 그녀가 우리를 캐나다의 문화 생활로 이끌어 준 셈이다. 물론 그때쯤, 혜일은 Mendelssohn Choir에서 노래 하기 시작했고 Canadian Opera Company 에서 합창 단원으로도 일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외 여러 음악회에서 솔로 무대에 출연하거나 또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음악 인들과 활동하기 시작해 바빠지고 있었다.

이 현지교회에는 교회가 스폰서한 월남 보트 피플이 올 때까지 우리가 유일한 아시안 가족이었지만 어떤 주말에는 ‘한국의 밤’이라는 행사를 열고 한국 영화도 보고 우리가 준비한 약간의 한국 음식도 맛보면서 한국전통무용단과 태권도시범단을 초청해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80년 초에 접어들면서 아내는 음악 활동이 바빠지고 해외 여행이 잦아지면서 이 현지교회에서의 솔로 활동은 접어야 만 했다. 하지만 이민자로서 현지 교회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관계를 맺어 간 것은 우리 가정이 캐나다 사회를 경험 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이 현지교회에서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그 후 아내는 자신의 음악 활동 외에도 한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조직하고 연주를 통한 모금 활동을 진행해 노숙자 단체나 암연구 센터와 같은 곳에 기부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