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훈


한상훈: 토론토 한인회관 건립의 유래


2010년 6월 27일 고국의 이명박 대통령 일행이 토론토 한인 회관을 방문하여 이곳 한인 동포들을 만나고 간 것은 우리 한인 이민 역사와 한인 회관 건립 이후 처음 있는 크나큰 이벤트라 하겠다. 고국의 대통령이 들려가고 또 고국의 대통령을 맞을 수 있는 한인 회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토론토 교민들에게 큰 자랑이요, 보람이라 할 수 있다.

필자와 한인 회관 건립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1977년 마련된 첫번째 회관 (5,000sqft. Eglington/ Victoria Park Ave. 근처에 있는 20 Mobil Dr.)과, 두 번째 현 한인 회관 (over 20,000sqft. 1133 Leslie St.) 건물 모두 필자가 한인 회관 건립 위원장으로 (현 회관 건립 시는 Pan Asia 이창복 사장과 공동 위원장) 관여 하여 마련 되었다.

필자는 1969년 5월에 이민을 왔으며 당시 이곳 한인들의 현황은 인구 650명, 한국과 캐나다와의 국교 후 얼마 안되어 첫 대사로 백선엽 대장이 퇴역하여 오타와에 부임하였고 한인들은 대부분 공장 노동으로 생업을 하였으며 한국 식품, 한국 식당 하나 없었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교회가 두어 개 있는 정도였다. 한인 전문인으로는 첫 한인 회장인 윤여화 약사, 미국에서 건너 온 구상회 의사, 미국에서 학위를 하고 토론토 대학에 자리를 마련한 윤택순 교수, 토론토 공대를 졸업한 정태만 Engineer 정도였고 변호사와 회계사는 한명도 없었다.

필자가 한인회와 연관을 맺은 것은 1970년대 초 당시 한인 회장인 신기락 회장(의사)이 나를 불러 한인회 이사를 하라고 하여 관련 하게 되었으나 별 활동이나 도움도 못 드리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당시 한인회 사무실은 현 Bloor 외환은행 건너 2층 건물에 방 한 칸을 얻어 쓰고 있었으나 초라하고 옹색하였다.

그 후 필자는 내 사업에만 열중하고 있던 차 1976년 당시 한인 회장 장철익 씨가 집으로 찾아 왔다. 그 분은 단도직입 적으로 “당신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느냐?, 한인 사회를 위하여 무엇인가 하여야 하지 않느냐?”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당돌하고 무례한 언행이었다. 그렇다고 같이 흥분할 수 없어서 회장님 뜻은 잘 알겠으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 이야기 해보시라고 하셨다. 그 분 말씀은 지금 한인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한인회관 건립” 이라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 이야기가 나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으니, “한인회관 건립 위원장” 자리를 맡으라는 것이었다. 회관을 건립하자면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있느냐고 물으니 근근히 모은돈 1만 5천 불을 노윤거 목사님과 김문량 장로 (두 분 모두 작고)가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인수하고, 모금부터 더 하라는 주문이었다. 그 때 나의 심정은 한인 사회를 위하여 무엇인가 하여야 겠다는 소명감은 있었지만 모금부터 하라니 난감하고 답답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할 수 도 없고, 이렇게 나의 한인회관 건립 위원장 감투는 시작되었다. 그 직후 이종문 약사 등 여섯 명의 인사를 영입하여 건립 위원회를 조직하여 모금 운동에 돌입하였다.

한인들이 모일 만한 단체, 기관, 교회, 그리고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모금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고 신문에 기사로 알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수개 월 하다보니 약 7만 불 가량 모금이 되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이 되지 않았다.  

당시 토론토 총 영사관은 그 얼마 전 1975년 8월에 처음 개간하였는데 초대 총 영사로 이창범 씨가 부임하였다. 필자와 이 총영사는 대학교 동문이고 학번이 비슷하여 곧 친분을 쌓을 수 있었으며 그 시절 진행중인 한인 회관 건립 운동을 가까이서 관심을 가지고 많이 격려해 주었다.

모금이 난관에 봉착하자 이 총영사와 만나 의논하였다.  당시 한인들의 재력으로는 더 이상의 모금이 어려우니 모국 정부에서 보조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가끔 오타와에서 토론토를 방문하는 진필식 대사를 만나 사정을 알렸으나 그 분은 우리 모금 가지고는 안되니 더 모금 하여라 그러면 모국 정부에 매칭 펀드로 신청하여 보겠다고 하면서 난색을 표해왔고 그 후 얼마 있다 서독 대사로 전임해 가고 후임으로 유엔 대사였던 한병기 대사가 오타와로 부임하였다.

한 대사는 박 대통령 사위되시는 분이고, 토론토 영리무역의 이영현사장과 친분이 있는 관계였다. 한 대사와 토론토 방문 때마다 이영현사장과 자리를 함께하며 이 곳 한인회관 건립 상황을 설명하였고, 누구보다도 조건이 좋은 한 대사께서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 해 가을, 한병기 대사는 본국 대사회의에 참석하고 귀인하면서 놀랍게도 20만불을 지참하여왔다. 그 때 심정은 만군을 얻은 기분이였다.

그 후 바로 그 당시 토론토에서 활약하던 여섯명의 부동산 중계업자를 소집하여 건립 위원회에서 제시하는 금액과, 크기, 위치의 건물을 찾도록 하였는데 약 1달만에 이대환씨 (현 신학대학장)가 제시하는 건물이 우리 조건에 맞아 구입절차를 밟았으며 그렇게 우리의 첫 한인회관은 마련되었다. (가격 20만 불, 크기  5000sqft, 위치 20 Mobil DR. Toronto)

인수 후 소유권 문제로 영사관과 당시 반 정부 민주와 운동 단체와의 갈등과 파동이 있었는데 결국 한국 정부의 양보로 캐나다 한인 회 소유로 일단락 되었다. 그 당시 토론토 한인 인구는 만명을 헤아리고 있었으며 1977년 8월 새로 취임한 강신봉 회장에게 회관을 인계하고 건립 위원회는 해체하였다.

그 후 한인회관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자선단체 자격 상실, 부동산 세 체납 등 여려움을 해결하느라 1989-1990년 윤택순 회장의 노고가 많았고 체납 부동산세를 위하여 교민사회에서 모금한 액수가 12 만 불을 넘었다.
 

한 인 회 관 (2)

어려운 가운데서도 Mobile Dr. 건물은 한인 회관으로 서의 구실을 십 여년 넘게 감당하였으며, 그간 토론토 지역 한인 인구는 5만을 헤아리면서 첫 회관이 좁다, 불편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92년 온타리오의 유통업계가 일요 영업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한인들의 소규모 자영업자 (corner store)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당시 온타리오 주정부 Bob Rae가 이끄는 신민당이었고, 한인 신민당 자문위원은 이경복씨, 이 위원은 또 Bob Rae 주 수상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있어, 피해 입은 한인들의 전업을 위하여 “한인 사업 훈련 센터 (Korea Business & Training Center)”의 설립과 운영을 위한 주 정부 재정 지원 $75만 불을 얻는데 성공하였으나, 전업을 위한 직업 훈련 및 교육이 현실적으로 수비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당시 한성택, 장추국 한인 회장을 거치면서 많은 우여곡절 끝에, 당초 직원 훈련이 한인 센터 건립으로 목적 변경이 되었다.

주 정부로부터의 재정 지원 $100만 불은, 다음 취임한 서경준 회장 때 이루어졌으며, 서 회장은 필자와 Pan Asia 이창복 사장을 건립 위원장으로 선임하여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시작하였다.

주 정부 지원금 $100만 불은, 우리 한인 사회가 같은 금액을 모금하여야 한다는 조건부 Matching Fund였다. 주 정부의 Matching Fund 조건부는 모금을 수월하게 하였고 많은 뜻 있는 한인들과, 기관, 단체, 교회, 은행뿐만 아니라, 우리 한인 사회와 캐나다 유관 단체까지도 호응하여 무려 $120여만 불이 넘는 모금이 이루어졌으며, 교민 사상 전무후무 한 기록이라 하겠다. 그때 모금에 참가한 이름과 금액이 현 한인 회관 Lobby에 각인되어 있다.

그 결과 총 건립 기금은 주 정부 지원금 $100 만불, 모금 액 $125 만불, 구 한인 회관 매각 대금 $25 만 불과 기타 등 총 $260여 만 불에 달하였다. 모금 일화 하나, 1995년 고국의 김영삼 대통령 수행 장관인 공노명 외무는 필자와 중 고교 동기 동창이고 친하였으며, 이 친구에게 까지 모금을 호소 하였더니, 해외에 그 많은 한인 회에 외무부 공금을 지원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였다. 그러나 그 얼마 후 $1 만 불을 보내왔다. 말인즉, 자기 사비로 보냈다는 것. 어쩌다 서울에서 그 친구 만나면 미안한 생각이 들고, 그 친구는 “그래 토론토 한인회는 잘 되가?”하고 묻곤 하였다.

건물 선정은, 첫 회관과 같이 한인 부동산 소개업자들에게 위촉하여 몇 개 건물을 추천 받았으나 가격이 맞지 않았고, 윤정립씨가 (현 무궁화 양로원 사무장) 현 회관을 추천하였다. 이 건물은 토론토 모 영화 제작사의 소유였으나 Mortgage를 체불하여 은행에 차압 당한 상태였고, 오래 방치하여 건물이 낡아, 가격이 $67만 5천불에 불과하였으며, 위치가 조용하고, 깨끗하고, 전망이 좋아서 한인 회장과 대부분 관계자들이 선호한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아 구매 절차를 밞았다.

단점이 있다면 교통이 불편하다는 것. 직후 건립위는 건축사인 연상만, 이철용씨를 선임하여 개 보수 설계를 위축하고 건설업자를 선정, 공사를 진행하였다. 이렇게 현 한인 회관은 서준경 한인 회장 재임시, 크기 2만 여 평방 피트, 공사비 $260여만 불, 위치 1133 Leslie St.에 1998년 완공을 보았다.

그 후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재임한 이춘수 회장이 추가 모금을 하여 일부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수하였다. 현 한인 회관 완공 후 여러 공로를 통하여, 해외 한인 회관 가운데 토론토 회관이 가장 잘 되었다는 평판을 들었다.

현재 필자의 희망과 꿈이 있다면 현 회관 양편에 있는 Office Building을 일부 추가 구입, 우리 용도에 맞게 개 보수하여 한인들의 유관 단체인 노인회, 여성회, 한글 학교 협의회 등등이 입주하고 교통 인구가 늘어, 인근 지하철과 한인회 사이를 Shuttle Bus로 왕래하면 큰 비용 안 들이고 교통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건립 위원장을 하면서 일본 및 중국 회관을 가 보았고 규모나 내용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았다. 필자는 우리 회관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앞으로 1.5, 2세대를 겪으면서 더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

2010년 7월 22일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