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서


필 서: 한국어와의 애증 관계

Phil Seo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말한 단어는 한국어였다. 하지만 벤쿠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유치원에 들어가던 시기에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모국어를 다시 배우기 위한 나의 여정은 초등학교에서 부터 고등학교 까지의 시기를 가로 지르는 토요일 아침의 한글학교와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교 중급 한국어 수업, 그것을 끝마치기 위한 한국에서의 한 학기 유학생활을 포함한다. 결국 나의 한국어는 완벽하지 못했지만 끔찍하지는 않았다. 끔찍한 것이 어떤 것이냐면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있을 때 택시 기사 아저씨가 “야, 너 한국인이야. 근데 그걸 왜 제대로 말하지 못해”라고 꾸짖거나 작은 꼬맹이들이 “왜 웃기게 말해요?”라고 묻거나 친척들이 “이게 무슨 망신이니,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으면서 언어는 모른다니” 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나는 한국어로 말하기를 정말 싫어하거나, 자주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거나 스스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2017년으로 빠르게 넘어오면, 16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갔다. 이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그 모든 힘든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한가지는 바뀌었다. 시간이 지나 아기와 함께 하면서 나는 좋은 것이 되었든 나쁜 것이 되었는 내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는 “이봐, 난 캐나다에서 태어나 하키를 사랑하고, 친구들과 영어로만 대화하고, 중국계 캐네디언이랑 결혼해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혈통을 가진 아이가 있어. 그래서 내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건 괜찮아”라고 마침내 말하기 위한 30여년에 걸치는 완벽주의와의 싸움이었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배울 수 없었던 것이 실수를 만드는 것에 대한 나의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한국어에 서툰 사람이며 나는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올해 한국에 갔을 때, 모든 친척들과 낮선 사람들, 심지어 택시 기사 분들에게도 유창하지 못한 한국어로 자유롭게, 큰 소리로 말하고 다녔다. 결과과 어땠냐고? 그것은 나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시선을 바꾸었을 때 나 자신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언어 하나를 알려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내게 자아의 수용을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