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2015년 7월 1일, '캐나다의 날'에 캐나다에서 조교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과학자로서의 내 여정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륙에 이력서를 넣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기록들을 보면서 놀라곤 한다. 저 많은 이력서에 또 추천서를 써준 분들의 노고는 얼마나 더했을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우여곡절 끝에 결국 기회는 캐나다에서 왔다. 그리고 또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의 날, 캐나다의 행정수도 오타와에서 교수로서의 일상을 시작했다. 그게 벌써 2년이 됐다. 그 2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캐나다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과학 제도들을 배우는 일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들을 만나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지난 2년이 내 최선이었느냐고 말한다면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부끄럽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활비와 연구비 모두는 캐나다 정부에서 나온다. 외국에서 받는 연구비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으므로, 내 연구원과 학생들의 월급도 모조리 캐나다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캐나다 정부의 돈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는, 항상 많은 고민을 한다. 많은 한국인들을 봤다. 어떤 이들은 아예 한국인을 피하고, 어떤 이들은 아예 뻔뻔하게 캐나다의 돈을 받으며 전혀 캐나다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 어느 중간 즈음에 답이 있을 것이다.

다시 캐나다의 날이다. 처음으로 캐나다 초파리 학자들을 만나고, 아주 풍성한 결실들을 안고 오늘 밤이면 다시 오타와로 날아간다. 한국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캐나다는 내가 그렇게 살아도 될 둥지를 제공해 주는 공간이다. 다양성을 국가 최고의 철학으로 삼는 나라에서 교수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나는 캐나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지난 2년의 공부를 바탕으로 캐나다가 향후 몇 십년동안 장기적인 계획을 도모할 수 있도록 내 몫을 다 할 생각이다.

아마도 그것이, 결국은 한국어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주제에, 캐나다에서 녹을 받는 학자가, 그 국가의 고마음에 보답하는 방법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캐나다에 사는 한인 과학자가 캐나다와 한국 모두에 기여하는 한 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내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면서도 캐나다에 기생하지 않고 기여하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Happy Canada Day!

----

김우재, Assistant Professor
Department of CMM
University of Otta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