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샤 매이나드


파트리샤 매이나드: Connecting through adoption

Written by Patricia Maynard

입양을 통해 캐나다-한인 커뮤니티와 처음 알게 되었다. 두 살이 된  딸이 있었지만 우리는 더 많은 아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남편이 국제 입양에 대해 알아보고 있을 때 ”the Children’s Aid Society” 에서 네 살이 된 딸을 한국에서 입양한 가족을 만났다. 우리는 손바닥 위에 적어 온 주소로 빠르게 서울에 있는 사회복지 단체에 연락을 취했고 그로 부터 2년이 지난 후 우리 아들이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2년 후 둘째 아들이 입양되었다. 두 아이 모두 서울에 있는 위탁 가정에 있었으며 첫째는 양부모님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가 수양어머니를  아주 많이 그리워 했기 때문에 새로운 집에 적응하기는 것은 그 아이에게 아주 힘든 상황이 분명했다.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한 가족으로서 한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 수양어머니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아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다시 온 첫 번째 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둘 모두에게 아주 감동적인 방문이었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것은 다름에 적응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우리 아들들은 한국어만 들으려고 했으며 절대로 요람에서 잠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겁먹어있었고 초기에는 많이 울었다.   다행스럽게도 지역 입양 그룹을 찾을 수 있어서 우리는 운이 좋았다. 입소문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  뿐 아니라 한국 아이들이 있는 가정들과도  함께 모여서 서서히 돈독한  관계를 형성했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으며 그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또 오타와 한인커뮤니티와 연결되고 오타와 한글학교에 갈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우리 아이들은 토요일 오전 한국어 수업에 참여했으며 분기별 소풍이나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다른 활동들에도 관련되어졌다.  학교의 한국인 가정들은 아주 적극적이었으며 우리 아들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재미있게도 한글학교에 가장 큰 흥미를 가진 아이는 한국인이 아닌 우리 딸이었다. ) 현재까지도 우리는 2017년 5월 캐나다 상원 에서 주최한Asian Heritage Month이벤트 같은 곳에서 한글학교 동료들을  때때로 만난다.

우리 아들들이 더 많은 그들의 유산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나는 부모로서 적정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우리 아들들은 단지 초등학교에 있는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토요일 아침의 한국어 수업보다 친구들과 더 놀기를 원했다.  

입양은 입양아들에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 아주 많은 질문들을 남긴다. 그리고 항상 그들이 언젠가는 다시 연락을 취해 보기를 원하는 또 다른  친부모의 존재가 있다. 우리의 성인이 된 아이들은 만약,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친가족을 찾기로 결심하면 우리가 지지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시각으로 볼 때 나는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될 수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자주 우리 아이들의 친부모와 그들이 자기 아이들에 대한 입양을 결정한 순간의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우리의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이 아름다운 아이들을 나에게 맡겨주어서 감사하다. 그들도 성공한 캐네디언이자 캐네디언 –코리안이 된 이 아이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