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오


테일러 오: 캐나다인이기 전에 한국인?

나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성장했다. 훌륭한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를 사랑하며 수학이 가장 잔인한 고통의 한 형태임을 안다. 읽기에 재능이 있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양의 단어가 들어 있는 글도 잘 읽었다. 아시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몇 블록 떨어진 가장 가까운 곳에 킨조 스시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 모든 특징들이 독자들에게 내가 캐네디언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서양문화가 익숙한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나는 하나 부터 열 까지 전부 캐네디언인 아이였다. 그런데 왜  항상 캐네디언으로 불리기 전에 한국인이라고 먼저 불리는 것일가?

정말로 궁금한 질문이었으므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외모와 피부 톤이 즉석에서 사람들에게 논밭과 밀짚 모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캐네디언 대신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것에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나 또한 스스로 모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부모님으로 부터 충분히 이해가 가는 너는 한국계 캐네디언이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만약에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태어나셨고 내가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그 두 곳 모두의 결합이 된다. 하지만 자라나면서 너는 아시아인처럼 보여서 캐네디언보다는 한국인으로 생각된다는 친구들의 추측은 흥미로웠다. 스스로를 정의 한다면, 나는 한국과 캐나다 두 세계의 결합이지 한국인으로만  정의될 수는 없다. 그냥 한국인이라고 해서 김치만 먹지는 않는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내 영어가 녹 쓴 바퀴 굴러가듯 삐걱거린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내가 김정은과 연결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말 감사하게도.

한국계 캐네디언의 의미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서양의 전통을 포용하는 것과 동시에 어른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 처럼 모국의 전통이나 복장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한국과 캐나다 두 세계의 결합이 전통적인 한국인과 동시대 캐네디언들의 새로운 철학을 창조해오고 있다고 믿는다. 한국인 가정들의 노골적인 애정표현과 장난스러운 행동들을 제한하는 엄격의 벽은 서양 가정의 분명한 특징인 친밀함과 자유로움의 파도에 의해 서서히 침식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가정이나 다른 많은 가정들에서 처럼 ‘부모와 자식 사이의 확고부동한 존경’ 과  서양 가정의 ‘개방되고 자유로운 사랑’ 사이의 특별한 결합이 만들어 오는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나를 캐네디언 이전에 한국인으로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두 나라 모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떄문인 것 같다. 나는 한국인의 자부심과 끈기를 가지고 태어난 한국의 후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서양 세계의 돌림판 위에서 채워지고 모양을 갖춰 온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나의 집을 사랑하는 동시에 나의 모국도 사랑한다. 그리고 둘 중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하나의 세상만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