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환
김봉환: 한인동산의 역사
마니토바주의 한인이민사를 제대로 기록하려면 빼놓을수 없는 아주 중대한 교민들의 성취가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인회관과 위니펙에 거주하는 노인들과 영세민자들을 위하여 한인교민들이 피땀을 흘리며 애써서 힘들게 지은 한인 동산을 들수 있겠다.
오랜 기간 동안 이곳 교민사회의 숙원사업이던 한인회관 및 영세민 주택 건립 계획이 시작된것은 1987년에 한인회에서(회장: 박득화; 이사장: 최능원(고)) 한인회관 및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기로 결의한때 부터이다. 이후 이계획은 이종동회장(1988-1990)이 이어받아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인영회장 (1990-1992) 임기 기간동안 (이사장:유증서; 건축위원장: 박영수) 위니펙 시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 활동을 펼친 결과로 교통이 편리한 시내에 위치한 위니펙시 소유의 빈땅을 한인회관 및 아파트를 짓기위한 대지로 $50,000불의헐값으로 구입하게된것이 한인회관을 건립하는것이 막연한 교민들의 바램이 아니라 성취 할수있는 목표가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단 한가지 중요한 조건은 반듯이 새로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고 이 단체가 새건물을 짓고 건물의 관리와 소유권을 유지하여야만 한다는것이었다. 그 이유인즉 마니토바 한인회는 그당시 캐나다 연방정부에 자선단체로 등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민 사회의 숙원사업인 한인회관및 노인아파트를 건립하기 위하여 한인회가 주축이되어 서둘러 비영리 단체 사단법인 한카주택공사 (Korean-Canadian Housing Corporation Inc.)를 설립하고 주정부에 등록을 필한것은 1991년 11월26일이었다 (초대사장: 이암).
지상 6층, 지하1층의 한인동산은 (침실1개짜리: 18동; 침실 두개: 5동;침실 3개:5동) 총 28동의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하실과 1층의 회의실과 사무실을 한인회에서 사용하고있다.
재원 확보
한인회관 공사의 착공과 완공은 김봉환회장 (1992–1994) 임기 기간동안에 이루어젔으며 그 무렵에 위니펙에 거주하는 교민수가 약 1,200 여명 가량 밖에 않되는 소규모의 교민사회가 정부 차원의 커다란 재정적 협력이 없이는 마니토바 교민들 자체의 재력으로는 감히 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는 없는 형편이었다. 왜냐하면, 아파트의 건축비만해도 당시돈으로 2백 2십만불이 필요했는데, 한인회에서 뫃아놓은 건축기금은 불과 10만불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캐나다 주택은행 (Canada Housing and Mortgage Corporation)에서 35년 닫힌 1차근저당으로 2백 12만 2천600불을 9.5% 고정이자로 대출받고, 마니토바주 주택부(Manitoba Housing & Renewal Corporation)로부터 열린 2차 근저당 7만 5천불을 융자받아 공사를 착공하였다.
빙고장 자원 봉사 및 건축기금 모금활동
마니토바 주정부는 한인교민들의 적극적인 로비활동에 걸맞게 그들이 도와줄수있는 일들은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예를 들면 당시 위니펙 촬스우드 (Charleswood) 선거구 주의원겸 주택부장관 짐 언스트 (James Ernst)씨는 자기 선거구에 거주하는 김회장이 부탁하는 일이면 주저하지 않고 도와주었다. 실질적으로 그가 도울수 있는 제일 간편한 방법은 빙고장에서 교민들이 자원 봉사를 하면 하루 저녁에 크게는 3천불 작게는 1천5백불을 벌을수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는것이었다. 허지만 하루저녁에 3천불을 벌기위해서는 자원봉사자 20명을동원하여 빙고장에 최소한 15분전에 도착해야만하고, 그중에 한명이라도 모자라거나 조금 늦게 도착하면 빙고장에서 그날 할당받은 시간에 봉사할 기회를 박탈당하기때문에 책임을 맡은 한인회 임원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했다. 20여년전만 하더라도 빙고장에는 환기시설이 좋지않을 뿐만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애를 먹기도했다. 이밖에도 장회장은 진주시와 위니펙시의 자매 결연 행사의 일환으로 위니펙시장 빌 노리(William Norrie)씨의 진주시 공식방문때 동행 했으며 그 인연으로 진주시 대표단은 건축기금 1만불을 기증하였다.
한인회관 개관식
1994년 6월 15일 오후 2시에 새로지은 한인동산 건물앞의 주차장에서 거행된 개관식은 아마도 마니토바 교민사회에서 행해진 가장 크고 뜻깊은 행사이었다. 이 뜻깊은 행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오타와에서 신기복대사, 토론토에서 이면주부총영사, 마니토바 주수상 게리 필몬 (Gary Filmon), 주택부장관 린다 맥인타쉬 (Linda MacIntosh),
짐 언스트 전 주택장관, 위니펙 시장 수잔 톰슨 (Susan Thompson)등이 참석했으며, 캐나다 수상 쟝 크래티엔 (Jean Chretien)과 연방 주택부장관 데이빋 딩왈 (David Dingwall) 은 축전을 보내주었고, 로이드 엑스워디 (Lloyd Axworthy) 연방 인력장관은 그의 특별보좌관 로버트 카다스 (Robert Kadas)를 보내어 그의 축사를 대독하게 하였다. 개관식은 제리 데스몬드(Gerald Desmond) 신부가 한국말로 행한 기원 으로 시작하고 이영선 목사가 영어로 축도를함으로 끝을 맺었다. 마니토바 한인사회가 이루어낸 큰 성취를 축하하기 위하여 특별히 고국에서방문한 진주시 대표단등 외부인사를 포함한 250여명이
이 자리에 참석하여 한인회관 개관식을 더욱 뜻깊게 해주었다. 이날행사의 마지막에는 김미란양의 한국무용 독무, 어머니 합창단소속 사중창단이 “산 넘어 남촌” 과 “한송이의 모란”을 불러 모국을 떠난지 오래된 교민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했다.한인회는 이짤막한 연예 순서가 끝나자 마자 1층 회의실에서 신대사가주신 리샙션 보조금 1천불을 보태어 하객들을위한 자축연을 진행하였다.
노인정
한인회관 지하1층에는 서정오(고) 노인회장과 손기봉 노인회장의 노고로 모국의 사랑방을 아름답게 설계하여 지었으며 해마다 음력 설날에는 한글학교와 노인회가 합동으로 학예회와 설 잔치를하며 어린이들이 노란장판이 깔린 사랑방에서 세배를하면 노인들은 절을 받고 어린이들에게 세배돈을 줌으로서 한국의 옛 풍습이 고국에서 멀리 떨어저서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고국의 미풍양속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하겠다.
노인학교 교실
노인학교 (교장: 유증서 (고))는 마니토바주 정부의 뉴 호라이젼 (New Horizon) 이라는 노인들을위한 부서에 신청하여 1만 5천불을 보조받아 지하1층에 아담한 교실을 짓고, 그곳에서 교양강좌 및 각종 프로그람을 진행함.
맺는말
당시 마니토바 주택부에 근무하던 이태준씨와 더그 리아스 (Douglas Leeies)씨의전문적인 도움이 유효했으며, 한인회관의 지하1층을 짓기위한 임봉재(고) 전 건축공사 사장의 수고도 많았다.
한국사회도 그러하지만, 캐나다에서도 연방및 주정부의 장관들과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것이 교민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유도할수있는 유익한 도구임을 한인회관 건축과정에서 증명되었다고 하겠다.
한인회관은 15년후에 모든빚을 다 갚고나면 명실공히 마니토바 한인교민사회에서 가장 큰 재산이된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매년 25만불- 30만불의 정부지원 운영자금이 중단되므로 마니토바 한인회는 지금서부터 그때를 대비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하여야만 할것이다.
김 봉환 (한인 주택공사 사장)
2012 년 11 월 1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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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To be translated into English)
한인 회관의 현주소
이글은 주로 한인회관의 건립과정을 잘모르시는 최근에 이민 오신 교민들을 위하여 쓴 글입니다. 지금부터 16년전인1994년 6월 15일에 개관식을 거행한 한인회관은 수많은 교민들의 피와 땀이 섞인 노고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1,200여명의 작은 숫자의 교민들의 노력으로 2백 2십만불 짜리 (현재 시가 1천만불) 노인주택과 한인회관을 지역사회 자체의 혼신의 노력으로 건립한 곳은 캐나다의 다른 어느 교포사회에서도 볼수없는 전무 후무한 역사적인 성취였습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나는분들중에는 (고) 서정오 노인회장님, 박귀례 할머니, 박완희 전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있고, 건축기금을 기증하신분들 중에는 자기집 가개 앞길에서 교통사고로 어린나이에 숨진 견보배 (Julia Kyun) 양, (고) 김형갑 박사 유가족들의 귀한 뜻이 상기됨니다.
당시 캐나다수상 쟝 크레티엔 (Jean Chretien) 은 보내주신 축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건물이 저렴한 보금자리를 많은 가정에 제공할뿐 아니라 , 후손들을 위한 문화적 유산을 값지게하는 본거지가 될 것입니다.”
(“It will not only provide affordable housing to many families, but also serve as a centre of cultural enrichment for future generations.”)
그렀습니다. 우리는 이민 선배들이 혼신을다하여 힘들게 지은 한인회관과 아파트 (Korean Gardens)를 우리들의 후손들을 위하여 우리의 열과 성을 다하여 잘 보관하고 지켜야할 막중한 책임이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볼때 금년에 새로이 출범하는 한인 주택 공사 임원및 이사진들은 교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것을 삼가 천명하는 바 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인회관을 마치 개인의 사유물 처럼 남용하는 분들이 있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일도 마다하지 않을것입니다. 끝으로 희망찬 신묘년 새해를 맞이하여 교민 여러분들의 가정과 사업체가 늘 번창하기를 기원드립니다.
김 봉환 (한인 주택 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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